회사는 열심히 다닐수록 점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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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절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내 시간에 대한 비용만 지불할 뿐이다.

 

회사가 주는 신분, 경제적 안정감

처음 들어간 직장은 직원 수 200여 명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다. 서울 중심지의 고층빌딩 사이로 유독 존재감이 있는 빌딩이었는데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빌딩이었다. 4년 차 주임 직함을 달고나니 팀에 후임들도 꽤 들어오고, 업체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젊은 회사라 그런지 대리, 과장급이 대부분 실무를 장악하고 있었고 가끔 마주치는 부장, 이사급 분들에게는 밝은 인사로 나를 어필하곤 하였다.

 

그리고 몇 번의 이직 테크를 통해 '대기업 과장'직함을 달았고 연봉의 앞자리는 6이 되었다. 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흐름 속에서 안정감이 더 커져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따라오곤 했다. 특히 승진을 앞두거나 월말 사업계획 보고 때에는 그 예민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와서도 책을 펴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창 힘들 때 와이프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힘들어서 회사 관두고 싶어, 내 생명을 갉아먹는 느낌이야" 와이프는 황당하여했고 별다른 내색은 없었지만 나중에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30대 끝짜락에 나는 자발적 퇴사를 꿈꾸고 있다.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유롭지?

직장생활 11년 차. 자꾸 주변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들 일을 하는 모습이지만 파티션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HTS 화면을 모니터에 크게 띄우며 주식을 하는 고이사님, 화면을 어둡게 설정해놓고 모바일 게임을 하는 박 부장님, 계절에 맞는 옷을 열심히 쇼핑하는 강 차장님. 여기가 회사인지 집인 지 잠시 헷갈린다. 저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에게 직장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유독 나만 치이는 느낌은 왜일까?

 

6시 땡 하고 집에 가는 직원들과, 항상 야근을 하고 늦은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나. 도대체 무슨 차이지? 예민해진 상태에서 타인과의 비교는 항상 나를 피곤하게 했다. 스트레스는 업무 저하로 까지 이어지곤 해서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이는 정신을 차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칼퇴가 일상인 그들의 삶을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회사에서 직책이 아닌 '건물주', '주식부자', '아파트 분양권 부자' 등등 도저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일을 대충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다들 베테랑이다 보니 업무능력 and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허름한 정장만 입고 20만 km 구형 싼타페를 타고 다니시던 나이 지긋한 X차장님이.. 강남에 건물주라는 사실이었다. 이게 무슨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행복은 신기루와 같고, 나는 이제 허물을 벗을 때가 왔다. 

 

 

많게는 15시간 회사에 투입되는 '나의 시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사용시간의 질을 따져보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롯이 내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신규 사업팀에 발령을 받고 내 수면시간은 하루에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책상 위에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책상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다 녹아서 유리를 축축하게 적셨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점점 어긋나고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를 의지하는 팀원들은 처음과 달리 점점 눈에 초점이 없어졌고, 세상에 이런 표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수염이 점점 자라는 느낌, 아침에 바른 BB크림이 점심에 먹은 고등어구이 기름처럼 번질 때가 퇴근시간이다. 

 

 

대기업은 무슨.. 당장 내일이라도 잘릴 판인데..

우리나라 평균 퇴직은 49.1세라고 한다. 아직 10년은 남은 것 같지만 스스로로 갈고닦은 무기가 없다면 강호의 세계에서 고수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학연, 지연, 혈연 일절 없는 나는 더더욱 가장 퇴출 1순위 고위험 군이고, 눈치만 우사인 볼트급이다. 내 마음속에 질문을 던져보자. 이제 무엇을 준비할 거니?로 시작한 질문은 "그래서 너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데?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한량'이고 싶은 사람이다. 관직은 필요 없다. 그저 한가로운 시간과 사색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 그래서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그래도 블로그에 쓰는 생각들은 솔직해지고 싶다. 그래야 오롯이 내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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